선교사인 아버지 제임스 홀과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 사이에서 1893년 11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926년 7월 해주 구세병원 원장으로 부임하여, 의창학교 교장직도 겸임하였다. 결핵치료의 재원 마련을 위해 1932년 크리스마스 씰을 도입했으며, 이후 1940년까지 9회에 걸쳐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했으나, 일본 헌병대에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벌금 5000엔과 함께 국외 추방되었다. 1991년 4월 5일 98세를 일기로 별세해서 그의 유해는 한국으로 돌아와 양화진 제1묘역에 안장되었다. 양화진 제1묘역에는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 셔우드 홀의 쌍둥이로 태어난 날 죽은 프랭크, 여동생 이디스 마거릿, 셔우드 홀, 91년 9월 19일 타계한 아내 매리언 버텀리등 홀家 6명이 잠들어있다. 이들 가족은 왜 그 머나먼 조선 땅에 와서 죽기까지 이 땅을 섬겼을까요? 대답은 그들의 묘비에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 14:8) 석창우 화가
29살의 젊은 나이에 고압전기에 감전되어 양팔을 잃고 의수를 끼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기 감전사고가 있기 전 양팔을 갖고 살던 30년의 삶과 사고 후 30년의 삶을 반추하던 석창우 화가는 팔 없이 살았던 30년이 훨씬 소중하고 행복했다는 사실입니다. 3년 6개월 동안 성경필사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